"아이들 대신 3040 성인이 더 찾더니 결국…" 줄줄이 폐업

입력 2024-02-11 20:30   수정 2024-02-12 06:27

경기 부천의 한 초등학교 인근 문구점은 최근 폐업을 앞두고 제품을 원가에 팔았다. 색 바랜 종이접기 세트, 각종 게임기기, 퍼즐·블록 등 장난감 등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였다. 20~30년 전부터 팔던 제품까지 재고로 남아 판매가는 몇백원에서 2000~3000원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문구점을 찾은 손님들은 초등학생이 아닌 30~40대 성인이 많았다. 대부분 옛 추억을 느끼고 싶어 먼 지역에서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1995년경 팔던 오래된 게임용품을 사러 울산에서 찾아온 이도 있었다.

이 문구점 관계자는 “하루 매출이 2만원도 안 나오는 날도 있었다. 보다시피 근래에 손님들은 오래된 장난감을 수집하는 성인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사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 굳이 문방구를 찾지 않는다”고 했다.

초·중·고등학교 앞을 지키던 문구점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대구 한 지하철역 인근에 있던 큰 문구점이 문을 닫았다. 전국 곳곳에서 수십 년씩 자리를 지키던 문구점들이 폐업하거나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이 용돈을 들고와 먹을거리나 학용품을 사던 동네 문구점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져 인근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1만620여개이던 전국 문구소매점수는 2019년 9468개로 줄었다. 매년 500여개 업체가 사라진 것이다. 2019년 이후부터는 통계청 항목에서 제외돼 정확한 실태를 알 수 없지만, 현재 8000여곳(무인점포 제외·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추정)의 문구소매점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 앞 문구점’이 사라지는 주 요인은 저출산이 꼽힌다. 어린아이들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초·중·고 학생 수 추계’ 결과를 분석해보면 올해 513만1000명인 초·중·고교생은 2026년에는 483만3000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5년 뒤인 2029년에는 올해보다 16.7% 감소한 427만5000명으로 예측됐다.

여기에 2011년부터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습준비물 지원 제도’를 시행하면서 문구점 쇠퇴가 가팔라졌다. 학교에서 ‘학교장터’를 통해 입찰한 업체에서 종합장 등의 학습 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문구점을 직접 찾는 학생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저렴한 가격에 학용품을 파는 온라인 문구 쇼핑몰이나 대형 생활용품점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학교 앞 문구점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다이소는 2022년 기준 전국에 1442개 매장을 운영중이다. 1000~2000원 정도 싼 가격에 문구·과자 등 다양한 상품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 보니 아이들 발길이 많이 몰린다.

업계에선 다이소 매장 한 곳이 개업하면 문구 소매점 6~8곳이 폐업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밖에 아트박스, 핫트랙스마 대형 온라인 문구 쇼핑몰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기존 문구점은 격일제로 운영해 부담을 줄이거나 문구·완구 대신 저렴한 과자·아이스크림 판매를 늘려왔지만, 최근 학교 앞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무인 식품매장 등과도 경쟁해야 하는 신세다.

실제 지난 3일 오후 1시쯤 인천 부평구 한 초등학교 앞 한 문구점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바로 인근 건물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엔 학생이 10여명 있었다. 1000원짜리 군것질거리를 사먹는 학생들은 새로 지은데다가 저렴하고 제품 가짓 수도 많은 프랜차이즈 무인 식품매장으로 몰리는 추세다.

인천에서 40년 넘게 문구점을 운영해온 한 사장은 “오래전엔 이 일대에 초등학교 옆 길을 따라 문구점이 쭉 늘어서 있었는데 다 옛말이 됐다”며 “옛날처럼 교복이나 체육복을 문방구에서 사가는 시절도 아니고 학생 수도 줄면서 10여년 전부터 하나둘씩 문을 닫더니 우리 가게가 동네에서 유일한 문구점이 됐다”고 말했다.

경남 진해의 또 다른 문구점 사장도 “신학기에 체육복을 팔아 달에 400만~500만원씩 매출을 올리던 때도 있었다”며 “이젠 장사가 거의 안 되지만 계속 하던 일이라 버티고 있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많이 들어 더 이상 영업을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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